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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으로 부족한 점심: 식탁 위에서 체감하는 인플레이션

by HighMoney 2025. 12. 18.

정부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세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일 정오, 사무실 문을 나서는 직장인들의 체감 온도는 전혀 다릅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통계와 우리가 손에 쥔 지갑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존재합니다.

1. 익숙했던 단골집의 배신

오랜 시간 점심을 해결하던 골목 끝 김치찌개 집의 메뉴판이 바뀌어 있습니다. 8,000원이었던 가격표 위에 투박하게 덧붙여진 '10,000원'이라는 종이는 단순한 숫자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1.1. 사라진 '만원의 행복'

과거 만 원 한 장이면 식사 후 커피 한 잔까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만 원으로 메인 메뉴 하나를 주문하기도 벅찹니다. 식당 주인의 미안해하는 눈빛과 손님의 무거운 침묵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 식탁까지 밀려왔음을 실감합니다.

식당 주인 역시 고충이 큽니다. "재료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었다"는 사장님의 짤막한 하소연에는 삶을 지탱하기 위한 고단한 투쟁이 담겨 있습니다. 단골손님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과 가게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함이 메뉴판의 가격을 밀어 올린 것입니다.

2. 편의점 도시락과 '도시락파'의 귀환

점심시간, 식당가 대신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고 있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맛집보다는 가성비 좋은 도시락을 찾는 풍경은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2.1. 좁은 탕비실에서 나누는 동병상련

최근 저희 사무실 탕비실에는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 오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주부터 무거운 보온 도시락 통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반찬을 준비하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계산대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을 피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좁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 싸 온 반찬을 나누며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짠테크인가요?"라는 농담 섞인 질문 뒤에는, 줄어든 가처분 소득으로 어떻게든 일상을 지켜내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3. 통계가 담지 못하는 선택의 무게

경제 지표는 '근원 물가'가 안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서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입니다.

3.1. 삶의 질과 타협하는 순간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지출이 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던 과일을 장바구니에서 빼고, 고기 반찬 대신 저렴한 식재료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소박한 즐거움들을 하나둘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마다 느끼는 박탈감은 수치화되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회의실에서 논의하는 '금리 인상'과 '긴축'의 결과물은, 누군가에게는 오늘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메뉴판 앞에서 서성이는 5분의 망설임으로 나타납니다.

4. 숫자를 넘어 사람의 속도로

경제는 결국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학문이어야 합니다. 거시 경제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현장에서 만나는 상인들의 한숨과 직장인들의 고단함이 여전하다면 그 지표는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물가 소식을 확인하는 이유는 투자 수익을 올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나의 성실한 노동이 내일의 식탁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경제의 중심에 다시 '사람의 생활'과 '현장의 경험'이 놓여야 할 때입니다.